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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중도 강화하면 안철수 세력 흡수할까?

민주당, 중도 강화하면 안철수 세력 흡수할까?

해묵은 '중도 강화론'…선거 패배 면피 단골메뉴

2013.02.05  서어리 기자

대선 패배 후 민주통합당 내에서 '중도강화론' 등 노선 논쟁이 벌어지는 데 대해 '실체 없는 논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좌냐, 우냐'를 놓고 다투는 것은 다분히 이념적 논쟁의 성격이 강해 민생 이슈와 동떨어진다는 얘기다.

"5·60대 이탈, 안철수 현상… 중도로 가야"

'중도강화론'은 선거 패배 후 고비마다 나오는 민주당의 단골메뉴였다. 지난 18대 대선으로부터 불과 8개월 전인 4·11 총선 직후에도 이같은 주장이 제기됐다가 한풀 꺾인 바 있다.

'압승'에 대한 기대가 처참히 깨진 4·11 총선 직후, 문재인 당시 국회의원 당선자는 "당이 중도성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당시 김진표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의욕만 앞세워 국민과 멀어지지 않도록 개혁의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총선 당시 당 정체성에 맞지 않다는 당내 다수 의원들의 반발로 공천에서 떨어질 뻔했다.

17대 대선 패배 후 2008년 민주당은 강령에 '중도개혁주의' 정책 노선을 명시했다. 역시 '좌클릭' 때문에 졌다는 비판이 상당한 터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후 2010년 6·2 지방선거를 거치며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민생이슈가 부상하자 보편복지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과감한 '좌클릭'을 시도했다.

이처럼 노선 논쟁은 선거 패배 요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제기됐다. 특히 이번 대선 이후로는 5·60대 지지층 이탈 방지, 향후 '안철수 세력' 확보 등을 위해 외연 확장을 해야한다는 논리가 퍼지고 있다.

전당대회준비위원장을 맡은 김성곤 의원은 지난 1일 당 워크숍 발제에서 "우리당의 노선을 진보에서 중도로 완전히 바꾸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도, 중원을 상당히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정강 손질'도 주장했다. 그는 "향후 중도 세력으로 대변되는 안철수 세력을 당내에 흡수하기 위해서도 보다 균형 있는 강령과 정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황주홍 의원 역시 "민주당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중도개혁주의가 실종됐다"며 "민심과 당심을 일치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대선패배 원인을 추적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진급의 한 의원은 "10년 전에 노무현을 찍었던 5·60대가 불과 10년 사이에 급격하게 우경화된 것은 그간 민주당의 좌클릭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며 중도층 확보를 주장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 전 대선후보의 TV 찬조연설자로 나서 화제가 됐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도 민주당 노선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윤 전 장관은 최근 민주당 내 의원모임 토론회에 참석해 "선거 패배를 돌아보려면 먼저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중도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석한 일부 의원들은 윤 전 장관의 주장에 동조하며 '쌍용차 국정조사'의 필요성, 진보정당과의 연합, 햇볕정책 등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 1일 오전 충남 보령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워크숍에서 오른쪽부터 정동영 , 정대철, 이부영 상임고문, 박병석 국회부의장, 문희상 비대위원장, 박기춘 원내대표, 김동철 비대위원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중도' 개념 모호… 실체 없는 논쟁 대신 '아래로' 가야"

정당의 노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그 당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때문에 최근의 노선 논쟁이 자칫 당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평가위원회 간사를 맡은 김재홍 경기대 교수는 "민주당은 어디까지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며 "이념으로서의 중도가 아니라 부동층 흡인하기 위한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중도강화론'의 의미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보수적 정체성은 그대로 둔 채로 이번 선거에서 일시적으로 사민주의 정책을 차용한 것처럼, 민주당도 선거 시 전략적 차원에서만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중도강화론이 선거 패배 원인 분석 과정에서 나왔지만, 분석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있다. 도리어 중도가 아닌 진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은수미 의원은 한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좌클릭으로 5·60대가 보수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5·60대의 다수가 자영업자, 비정규직에 해당하며, 끊임없는 고용 불안과 차별의 고통 속에 있다"며 "비정규직, 자영업자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며 오히려 진보적 정책을 우선할 것을 주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당내 한 초선 의원은 "문제는 왼쪽으로 간 것 자체가 아니라, 말만 왼쪽으로 가고 행동은 그렇지 않아 신뢰를 상실한 점"이라며 "선거 패배 후 수습이 안 되니 엉뚱한 데서 답을 찾으려하는 것 같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진보적 이슈가 '시대정신'임을 강조했다. 그는 "2010년 이후 경제민주화, 복지 등 의제를 과거 한나라당이 받아들일 정도로 정치권 흐름이 바뀌었다"며 "한나라당은 점점 좌클릭하고, 민주당은 점점 중도쪽으로 간다고 하면 서로 차이가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애초에 '중도' 개념 자체가 모호해 내용 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선거 패배 원인으로 민주당의 좌경화를 들지만, 이 주장에 뚜렷한 근거가 없다"며 "정치란 컨텐츠를 갖고 얘기해야하는데 '중도'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실체가 없어 실속없는 논쟁이 되기 십상"이라며 '중도강화론' 논리를 정면 비판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이 '안철수 세력 흡수'를 근거로 중도 노선을 주장하는 데 대해 "당 밖 사에 정당의 정체성이 휘둘린다면 정당으로서 자존심이 없는 것"이라며 "오히려 일관성 없는 정책이 문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당내 좌우 노선 논쟁이 불 붙은 가운데,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난 1일 워크숍에서 주장한 '하방 노선'은 주목할만 하다. 이념투쟁에 골몰할 게 아니라 민생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

정 상임고문은 "좌와 우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국민의 삶으로 가기 위해 아래로 가야한다"며 "여의도 정치를 벗어나 국민의 삶이 있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