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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치판 행운아’서 ‘담대한 진보’로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치판 행운아’서 ‘담대한 진보’로 

 

2015.01.10  경향신문  원희복 선임기자

 

[원희복의 인물탐구] 야권신당 참여설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지난해 연말 몇몇 진보 인사들의 술자리에서다. 한 인사가 “정동영이 한진중공업, 용산참사, 쌍용차 농성장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면서 “요즘 ‘거리의 대통령’ 소리를 듣는다며?”라고 말했다. 이에 앞에 있던 한 인사는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그의 행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일관돼 있다”면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화는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최근 행보를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 고문은 지금 진보적 선명 야당 창당에서 최고의 관심 인물로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자 진보·개혁·시민·노동단체 인사들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국민모임)을 만들고 진보적인 선명 야당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국민모임은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의 독주를 막고 국민의 생존권을 지킬 의지와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면서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독재행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해도 새정치연합은 여당인 양 수수방관해 대다수 국민들이 등을 돌린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이상훈 선임기자



그의 페이스북엔 ‘거리의 대통령’ 댓글

국민모임은 2~3월 중 구체적인 당의 모습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새해부터 야권발 정계개편이 시작된다. 바로 그 정계개편의 중심에 정 고문이 있다. 그가 왜 진보적 선명 야당에서 주목되는 인물로 꼽힐까. 신당을 추진하는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 고문은) 과거 자신의 정치행태나 신자유주의의 병폐에 대해 공개적으로 철저한 자기비판과 반성을 했다”면서 “그는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현장에 가서 민중의 삶을 느끼면서 진정한 진보주의자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실제 정 고문은 당(새정치연합)이 계속 보수화 행보를 걸을 때 꾸준히 진보적 행보를 걸었다. 시점은 2010년 8월 8일 자신의 블로그에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쓰고부터다. 반성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정치인 중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하다. 그는 자신의 대선 패배와 탈당 후 무소속 출마,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노동문제에 소홀했던 과거를 참회했다. 이후 그는 뜨거운 열기가 가시지 않은 용산참사 현장에서 유족들과 같이 오열했고, 찬바람 몰아치는 고공 농성장에서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는 ‘거리의 대통령’ 혹은 ‘현장 왕’이라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정 고문은 박근혜 정부 들어 고조된 남북 긴장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강조했다. 특히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 민주수호 원탁회의’에 진보·통일원로 11명과 함께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해산은) 헌재 결정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집합적 의사에 의해 선택되거나 판단될 문제”라며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이른바 ‘종북몰이’의 광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같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조차 진보당과 거리를 두려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단한 결심이다.

그가 변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발언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10년 10월 민주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한 “이제 민주당은 중도 진보노선에서 ‘중도’라는 꼬리표를 떼고 ‘담대한 진보’로 가야 한다”는 연설이다. 또 하나는 2011년 8월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재벌 회장을 향해 던진 “증인,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마세요. 해고는 살인입니다”라는 발언이다.

그는 2007년 대통령선거에 나설 때까지 섬세하고, 세련되고, 귀족티 나는 보수여당 대통령 후보였다. 화면에서 보여준 세련된 방송 앵커에서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전국 최다 득표를 연거푸 기록했고, 야당에서 집권당까지 무려 40개월 화면을 장악한 대변인, 40대 집권당 최고위원 등등 그는 ‘정치판의 행운아’였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는 “가장 호감 가는 정치인, 가장 이미지가 좋은 정치인 상위권에 랭크되는 사람 중 하나가 정동영”이라며 “그의 긍정적 이미지는 그만큼 파괴적이고 무차별적이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긍정적 이미지 정치 이면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작고한 신문사 편집국장 출신의 조세형 전 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이 오래전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한 얘기가 있다. 그는 농반진반으로 “내가 기자 출신 정치인으로 최고위직에 올랐다”면서 기자 출신이 큰 정치인이 못 되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는 “기자 출신들은 상황이 터지면 객관적으로 분석만 하려 들지 몸을 던져 행동하지 못하고, 특히 (접대를 받기만 해) 남에게 줄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데 익숙한 기자 출신은 와락 껴안을 줄 모르고, 특히 정치는 ‘주는 것’(분배)인데 이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가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미지가 ‘별로’였던 이명박 후보에게 진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 아닐까. 최근 그에게선 몸을 던지지 못하고 줄 줄 모르는 기자 출신 이미지가 많이 없어진 듯하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앞세우며 약자의 노동현장과 함께하는 ‘대담한 진보주의자’로 바뀌었다. 2010년 자기고백 이후 외형적 행보와 그동안 발언으로 보면 그렇다.

 

 7·4 남북공동성명 42주년을 맞은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을 비롯한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20여개 통일시민단체 회원들이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촉구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 삼국지 인물전>을 쓴 작가 김재욱은 그를 조조군의 비장한 장수 ‘방덕’에 비유한다. “방덕은 유비군 관우의 이마에 화살을 쏘아 맞히는 용맹을 떨친 장군으로 관우와 마지막 전투에서 관을 등에 메고 ‘자신과 관우 둘 중 하나의 시신이 들어갈 것’이라며 출전했다. 그러나 전투에서 관우에 패해 항복을 권유받았지만 절개를 지켜 죽음을 택했다.” 정 고문의 곱상한 귀족 이미지와 180도 달라진 비유다.

하지만 아직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은 정 고문의 속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앞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정 고문을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시각을 대변한다.

정혜신 박사도 “(정동영은) 이미지 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알맹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뢰와 정직성, 인간미가 구비되지 않으면 금방 허상이 드러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가장 큰 고민은 탈당의 부담일 것이다. 자신을 대표, 대통령후보로 만들어준 당을 박차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2009년 악몽이 두려울 것이다. 당시 그는 ‘정치적 패륜’ 소리를 들었고, 나중에 복당하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었다. 공개적으로 참회하는 반성문도 썼다.

또 다른 고민은 신당의 성공 여부일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적 선명 야당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괜찮다. 휴먼리서치가 전국의 19세 이상 남녀 152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신당의 지지율은 18.7%로 새정치연합 지지율 21.1%에 근접하고 있다.(새누리당 지지율 39.6%) ‘신당 창당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7.5%로, 특히 수도권(서울 41.1%, 경기·인천 41.8%)과 젊은층(19~20대 47.4%), 40대 연령층(45.6%)에서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시적인 여론조사가 신당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모임은 명분만 가진 학계·종교계·시민사회단체의 느슨한 합의체일 뿐 바닥이 있는 조직도 아니다. 홍성규 전 진보당 대변인은 “신당은 민주노총이나 전국농민총연맹 같은 기층 대중조직의 지지나 연계도 없다”면서 “신당은 진보정당을 표방하지도 않고 진보정당을 이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진보매체의 한 기자는 “이번에 조합원 직선으로 당선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진보대통합에 관심이 약하다”면서 “민주노총 밑에서 정치세력화 요구가 있더라도 국민모임 신당과는 노선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이 점을 의식한 듯 정 고문은 1월 8일 민주노총을 전격 방문했다)

또 신당이 통일문제에 대해 어떤 구도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정 고문의 트레이드 마크는 누가 뭐래도 개성공단과 남북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이다. 그의 평생 꿈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 선명 신당은 신자유주의 노동문제를 강조하지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거의 없다.

대선후보 만들어 준 당 뛰쳐 나올까

현실적인 문제는 그와 같이 행동할 동지가 얼마나 되느냐이다. 대통령 후보일 때 계보원이 70명에 달한다고 했지만, 지금 그와 함께 행동할 금배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당내에서는 “같이 탈당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가에서는 손학규 전 대표와 김두관 전 경남지사를 동반 탈당 대상으로 꼽고 있지만 그들의 탈당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새해 벽두부터 정 고문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할 시점에 섰다. 그는 ‘담대한 결심’을 위해 말도 딱 끊었다. 공식 인터뷰는 사절이고, 잘하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중단했다. 당 신년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팽목항과 민주노총을 방문하는 등 ‘침묵의 저공비행’만 하고 있다.

이번에 어떤 결심을 하든지 그 결과는 정 고문의 정치생명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결정이 될 것이다. 비유하자면 그는 신민당을 창당해 선명 야당의 돌풍을 일으킨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되느냐, 아니면 3당 합당에 참여했다 회귀하는 등 좌고우면하다 꼬마민주당에서 쓸쓸히 사라진 KT(이기택)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의제와 노동문제 둘 다 중요하다"

일생 일대의 결심을 앞둔 정동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일체의 공식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다. 관심의 초점인 탈당 여부에 대해 지난 6일 오후까지 결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곧 결심하고, 정식으로 입장을 밝히겠다며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와 잠깐의 대화에서 그의 고민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Q. 그간 쌍용차 농성현장을 찾는 등 정치에서 노동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 발표한 신년 인사에서도 ‘유럽에서 정치의 80%가 노동의제’라면서 노동문제를 강조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우리 사회 발등에 떨어진 문제가 바로 불평등의 문제 아닌가. 죽어라 일하고도 자신의 정당한 몫조차 가져가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이 많다. 그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얘기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것 아닌가.”

Q. 원래 트레이드 마크는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문제, 통일문제 아닌가.

A. “노동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통일문제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통일문제도 중요하다. 나는 두 개를 같은 비중으로 본다.”

Q. 노동문제와 통일문제, 이 두 가지 의제는 바로 진보정당의 핵심의제 아닌가. 그래서 진보적 신당에서 러브콜이 오는 것 아닌가.

A. “진보가 뭔가? 나는 진보당 문제에 대해… 약자가 짓밟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나? 최소한 그 옆에 서주는 것도 진보라고 생각한다.”(그는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시민사회 원탁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보수정당 출신으로 이 원탁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는 새정치연합 인재근 의원(고 김근태 의원의 부인)과 함께 두 사람뿐이다)

Q. 단지 옆에 서주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인가. 본인이 직접 중심에 설 생각은 없다는 것인가.

A. “…(한동안 침묵) 짓밟히는 그분들에게 힘이 있다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연대해줄 힘도, 목소리도 없다.”

Q. 요즘 노동 약자들의 현장, 고난의 현장에 같이 있는다고 해서 ‘거리의 대통령’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A. “아이, 과분한 말씀이다. 그렇지 않다.”

Q. 최근 개혁적 진보정당 창당 움직임이 있다. 여기에 가담할 것인가.

A. “며칠만 시간을 달라. 늦지는 않을 것이다.”

Q. 자신을 대통령 후보까지 만들어준 당을 탈당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나.

A.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한다. 좀 시간을 주면, 다음주쯤에 터놓고 얘기하자.”

Q. 정치인으로 특장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본인의 특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글쎄?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고….”(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