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교육대협약을 제안합니다.

한겨레에 기고한 교육개혁에 관련한 글입니다. 블로거 분들의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나는 요즘 이 땅에서 가장 어려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느껴보고 있다. 지난 1월1일 포항에서 만난 한 40대 어머니의 절절한 말씀이 계기였다. “남편 월급이 200만원인데, 중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 과외비가 월 100만원이다.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백화점 구경을 못했지만, 아이들에겐 미안한 마음 뿐이다.”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더라면 더 비싼 과외를 받고 공부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죄책감마저 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내 고개가 아래로 푹 떨어졌다.

과외 못시켜 죄책감 드는 부모들

이태 전 돌아가신 어머님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남은 가족들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1974년이었다. 성동구 사근동의 판자촌 방 한칸에 들여온 재봉틀이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들은 새벽마다 어머니가 밤새 기운 아동복 바지를 보따리에 메고 평화시장에 내다 팔았다. 장남이자 가장이던 내가 민청학련 사건에 이어 강제징집으로 3년간 떠나 있던 사이, 어머님과 동생들은 재봉틀과 함께 삶을 버텨야 했다. 나도 대학 복학 전 1년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머님과 봉제 일에 매달렸다. 다들 어려웠던 70년대였지만,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그때처럼 최고 학부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한국을 세운 힘은 바로 교육이었다. 어려워도 우리 부모님들은 모든 것을 다 털어 자녀들을 진학시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교육으로 흥한 우리’가 장래에는 ‘교육으로 망한 나라’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월급의 절반을 교육비로 써야 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이다. 고통이다. 이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다.

지난해 말, 대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보여준 인터넷 동영상이 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동영상이었다. 대학입시 기준으로 쓰이는 내신과 수능, 대학별 논술고사 세 가지가 바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었다. 하숙집으로 전락한 집을 나와,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해야 하는 학창 시절은 죽음의 레이스나 마찬가지다.

입시 고통 ‘죽음의 트라이앵글’

이런 상황에 답해야 하는 것이 정치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1997년 집권할 당시 국가 아젠더를 ‘1번도 교육, 2번도 교육, 3번도 교육’으로 잡았다. 창의성을 강화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교육이었다. 그 결과 영국은 10년 만에 다시 유럽의 선두로 올랐다. 블레어 정부는 교육과 고용이 사람에 대한 최고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정부부처를 통폐합해 ‘교육고용부’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2600만명 정도인 유대인들을 보자. 전체 인구 수는 우리의 절반에 못미치는 이들이, 세계 부호 100명 중 50명을 내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22%가 유대인이다. 한국인 평균 지능지수는 106인데 비해 유대인들은 평균 99라고 한다. 차이는 교육이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재능을 8가지로 분류한다. 언어·수리·음악·미술·체육·인간친화·자연친화·자기성찰 등이다. 유대인은 이 8가지 재능군에서 자기 자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재능을 찾아 키우는데 최선을 다한다.

반면, 공장에서 공산품 조립하듯, 동일한 틀에서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지금의 교육제도로는 대한민국의 도약은 힘들 수 밖에 없다. 근본적인 교육혁명이 필요하다.

저는 ‘3무3강’의 교육혁명을 주창한다. 3무(無), 먼저 ‘학벌 없고’, ‘입시의 고통과 사교육비가 없는’, 그리고 ‘계층과 지역 차별이 없는’ 교육혁명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3강(强), 우리 사회가 ‘강한 활력과 기회’, ‘강한 창의력’, 그리고 ‘강한 경쟁력’을 갖춘 교육강국으로 되살아 날 수 있다.

교육수준을 세계화하기 위해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교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전 국민이 사교육비의 50% 이상을 영어교육에 쏟아 붓고 있다. 현재의 ‘영어마을’로는 부족하다. 더 큰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구로구 가리봉동의 구립 어린이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3살에서 5살까지의 빈곤층 자녀들을 위탁한 곳이다. 여기서도 학부모들의 최우선 요구는 ‘영어’였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꼭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던 이들의 절박한 호소를 기억한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가 책임있게 영어교육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대안을 말하자면, 먼저 인터넷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초중고 학생과 전국민이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영어교육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보급할 수 있다. 돈은 삼성과 현대에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던 기금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핀란드의 성공사례를 차용할 수 있다. 핀란드에는 영어로만 방송하는 방송이 있고, 다른 방송사에서도 영어로 제작된 프로그램은 핀란드어 자막을 깔아 영어로 방송한다. 우리나라도 2008년부터 시작되는 디지털 위성방송과 현행 공중파 방송에 영어 전용채널을 하나 더 늘린다면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교육 국가가 책임지도록

우리의 교육문제는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다.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을 잘못된 대입 위주의 교육현실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사교육비를 줄여 학부모들도 학비의 덫에서 풀려 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 60년 동안 이어져 온 학제를 우리 실정과 미래를 위해 과감히 개편할 필요가 있다. ‘5-3-3-5’ 학제를 제안한다. 현재 ‘6-3-3-4’ 구조인 초·중·고·대학교 학제를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5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대학교육은 2년 교양과정과 3년 본과 전공으로 나눌 수 있다. 교양과정은 누구나 입학이 가능한 2년제 국립 교양대학에서 수료하게 된다. 교양과정을 마친 뒤 시험성적에 따라 전공과목을 위한 본과로 진학하도록 하자는 게 새로운 제안이다.

대학은 연구 중심대학과 교육 중심대학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치열한 세계적인 경쟁을 이기고 우리 사회가 앞서 나가려면 21세기에 맞는 대학 개혁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질적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서 대학교육은 대학에 완전히 자율권을 줘야 한다.

초중등교육은 학부모, 교사, 전문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교육과정위원회’와, 교육의 과정과 결과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전문적 ‘국가 평가위원회’를 두어 미래에 대비하는 새로운 교육을 실시하게 해야 한다.

희망을 꿈꾸며 국민 곁으로

이런 변화는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통해 ‘사회적 교육 대협약’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온 국민이 준비하고 참여해야 한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삶이 약속되고, 일한 만큼 벌 수 있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고, ‘개천에서 용나는 세상’이 되어야 우리가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그 희망을 꿈꾸기 위해 국민들 곁으로 다가서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