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하루가 기적이다'. 지리산에 사는 내 친구 구영회 작가가 낸 책 이름이다. 실제로 언제 어디서 무슨 재난과 사고가 닥칠지 알 수없는 '위험사회'에서 별일 없는 하루는 기적에 가깝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문명의 발달이 위험한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지난 주말 북한에서는 탄도미사일을 또 발사했다. 한반도가 재앙의 낭떠러지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형국이다. 토요일 오전에는 휴대폰에서 재난 경보음이 울리더니 괴산에서 진도 4.3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문자가 떴다. 그리고 토요일 밤 충격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할로윈축제 도중에 153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고 백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참사다. 청년들의 죽음 앞에 옷깃을 여미고 머리숙여 참회한다. 단장의 슬픔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부모와 가족들에게 가슴 아리는 애도를 표한다. 정부는 참사 이후 후속 대책에 완벽을 기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없었는 지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책임의 소재를 밝혀내는 데에도 만전을 기할 것을 촉구한다.
인재와 천재가 번갈아 발생하는 참담한 현실 앞에 두손을 모으고 근본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다. 인간의 생명은 지구의 무게만큼 무겁지만 한낱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으로서 천하의 질서 앞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낮아져야 한다.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외교와 안보는 초당적인 지혜를 모아 대처하고 있는가. 도처에 도사린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공복들은 낮은 자세로 봉사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국민들이 믿고 신뢰하고 따를만큼 겸손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겸손한 마음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시작이다. 사람들끼리 편가르고 미워하며 교만함이 판치는 세상은 불안한 세상이다. 지도자나 대중이나 우리 모두 두손을 가슴에 얹고 스스로 낮아지는 것이 예측하기 어려운 인재와 천재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출구가 되지 않을까. 머리 숙여 속죄와 함께 억울하게 숨진 청년들의 명복을 빈다.
2022년 10월 31일
민주당 상임고문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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