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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편히 쉬십시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성당부터 찾았습니다.
그저 맨정신으로 견디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계속 기도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제 탓입니다.”
“좋은 곳에 가셔야 합니다. 이제 무거운 짐은 남겨 두십시오.”

그것 외에 돌아가신 분께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생전에 못찾았던 봉하마을이었습니다.
그저 힘든 여정 함께 했던 선배 찾아뵙는 마음이면 되었을텐데,
길지 않은 길 걸으며 자책하고 한탄했습니다.
사람들에 밀려 돌아설 때도 자책하고 한탄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제 탓입니다.”

2002년 참 힘든 경선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같이 가기로 결심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었습니다.
“정동영 의원, 고맙습니다” 그 말씀이 귀에 울립니다.
사소한 농담, 웃음소리, 흥얼거리던 노래 소리까지
하나하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왜 이제야, 왜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하는 마음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저에게 대통령님은 같은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동지이며,
부러운 뚝심을 가진 선배였습니다.
때로 부딪히고, 때로 다른 방법을 선택했어도
결국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는 깊은 믿음 변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섭섭했고, 더 잘해 보겠다는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섭섭함과 오기가 또다시 자책이 되어 돌아옵니다.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 한분 한분의 눈물과 통곡을 보았습니다.
그 슬픔을 넘어 저를 바라보는 그분들의 애절함을 보았습니다.
‘저도 너무나 슬픕니다. 저도 지키지 못해 아픕니다.’
그렇게, 그렇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사진 앞에서 그동안 못다 나눈 이야기 혼자라도 하면서
함께 밤을 지새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머리 숙이고 속에 맺힌 마음 털어내며 울고도 싶었습니다.
그렇게 솔직하게 슬픔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지금 상황이 아프기만 합니다.

보기에도 아찔한 절벽을 뛰어내리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오롯이 모든 짐 혼자지고 결심하셨을 마음을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씀 한자 한자 새길 때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뜻 앞에서 작은 원망, 작은 설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일이면 유언에 따라 한줌 재로 돌아가시겠지요.
그 환한 웃음도, 솔직한 모습도 이제 다시 볼 수 없겠지요.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 죄가 되어 슬픕니다.

바람이 되어, 이 땅의 흙과 물이 되어
생전에 염원하셨던 꿈이 이루어지는 걸 지켜봐주십시오.

마지막 가시는 길 편안히 가십시오.

 

2009. 5. 28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