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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故 조세형 선배님을 추모하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 시대의 지사형 정치가,
조세형 선배님을 추모합니다.


1956년 어느 날 경무대 기자회견장,
26살의 청년 기자 조세형은 손을 번쩍 들고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질문 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자유당의 실세 이기붕 국회의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회견장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옆에 있는 비서실장을 돌아보며
"실장, 한번 알아보도록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회견이 끝난 뒤, 동료 기자들은 크게 한 건 했다면서 조세형 기자를 치켜 세웠습니다. 신바람이 나서 신문사로 돌아온 조세형 기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뜻밖에도 '파면 - 기자 조세형' 이라는 사내 고시였습니다. 한국 언론사에서 해직 기자 1호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조세형 기자는 그 후에도 1961년 5ㆍ16쿠데타 직후 투옥과 해직, 1967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시절 또 다시 강제 해직 등 세 차례나 펜을 빼앗겼던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사 언론인입니다.


제가 언론계에 들어선 것도 조세형 선배님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큽니다. 학창시절, 조세형 선배가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마치고 나서 쓴 책 <워싱턴 특파원>을 읽고 기자와 특파원이 되고 싶은 꿈을 키운 것이 사실입니다.

조세형 선배님은 유머와 위트에 관해 당대 최고의 인물입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고, 웃음을 자아내게 하던 그 분의 유머 감각은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1997년 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시절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총재가 외국에 가는 것을 배웅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나오셨습니다. 배웅을 마친 뒤, 주위를 둘러보며 "이제 권한은 떠났고 대행만 남았구나" 라고 해서 한바탕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유머 감각이란 따뜻한 인간미에서 우러나오는 법입니다. 조세형 선배님은 늘 후배들을 아꼈고, 아랫사람들을 자상하게 배려하는 인간미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일평생 단 한 번도 추문이나 스캔들에 거론되지 않았던 맑고 깨끗한 분이었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조 대표님 같은 분을 국무총리 같은 자리에 모실 수 있었다면 그 자리가 한결 품격 있고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올곧게 한 길로 살아오시면서 품이 넓고 따뜻했던 조세형 선배님...

"백 개의 하천이 모여 하나의 강을 이룬다" 는 의미의 '백천'(百川)이라는 호와 같이 부디 그 넉넉함을 안고 편안한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