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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강희남 목사님께서 자결하셨습니다. 이 땅 통일운동의 큰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며 제2의 6월 항쟁을 요구하셨습니다. 용산을 다녀왔습니다. 그 슬픔과 분노를 어찌 뵐까 망설이다 조용히 찾아뵙고 분향 했습니다. 경찰병력으로 겹겹이 막아놓았더군요. 슬픔보다 더 큰 분노를 또 한번 느끼고 왔습니다. 아니어도 너무 아닙니다. 어떻게 국민과 함께 발전시켜온 10년의 역사를 1년 만에 이토록 뒤로 돌려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참담할 뿐입니다.

대선의 경쟁자로서, 또한 패배자로서 침묵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잘해주길 바랬습니다. 할말이 있어도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러나 이 정부에 대한 원망과 한숨소리가 커질수록 죄책감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침묵이 더한 죄가 되어 가슴이 무너집니다.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가 개인의 패배를 넘어 민주세력 전체의 패퇴와 국민적 고통을 초래한데 대해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더 이상 분노를 감추고 침묵하는 것은 고통받는 국민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이미 국민은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입니다.

백만이 넘는 촛불에 물대포로 답했습니다. 공권력이 선량한 국민을 짓밟았습니다. 국민들을 차가운 아스팔트로 내몰고 폭력으로 억압하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손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국민의 입을 막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리려 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국민을 침묵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독재정권시대의 소통방식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검찰과 경찰을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전 국민이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지난 정부의 모든 성과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이 정부의 초기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공의 축적과 과의 극복은 상식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러한 공과의 계승을 통해 정통성을 만들어온 것입니다.

무엇보다 개탄스러운 것은 남북관계의 퇴행입니다. 화해의 10년 세월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정확히 반대로 와있습니다. 이제 북한은 미사일을 마음대로 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문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재임 중 정상회담을 하셨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정상회담을 하셨습니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면담을 하며 민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본 원칙은 민족자결입니다. 남북문제의 핵심당사자는 바로 남과 북입니다. 대화와 외교적 해결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한민족의 미래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정부는 해법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화, 모든 것이 후퇴했고,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들을 배신해서는 안됩니다. 귀를 열고 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약속하고 지켜야 합니다.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약속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터야 합니다. 언론장악법 통과 시도를 폐기하십시오. 검찰과 경찰을 철권통치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검찰, 국민의 경찰로 돌려줘야 합니다. 용산참사의 원혼들과 유가족에게 참회하십시오. 명예를 회복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배상하십시오. 지금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참회와 자기부정없이 어떻게 성난 민심을, 죽음으로 절규하는 원성을 치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지난 대선때 정 의원이 조금만 더 잘했다면 이런 참사가 없었을 것이다”

매일 밤 용산참사현장에서 진행되는 미사에 참석했을때 신부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죄진 자의 마음으로 머리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2년 전 6월, 국민을 철권통치로 짓밟던 권력의 말로를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승리였습니다.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6월 10일 범국민대회조차 원천봉쇄하려 하고 있습니다.

서울광장은 열려야 합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우리 국민의 기본권리입니다. 이것을 거부하고 지금과 같이 억압의 통치를 계속 한다면 우리 국민은 또다시 분노와 저항의 역사를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의 지성인 교수들이 질식해버린 민주주의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상아탑을 넘어 들불처럼 일어나 규탄하고 있습니다.

죄진 자의 마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그것이 2007년 대선 패배에 대해 책임지는 길이라 확신합니다.


2009. 6. 9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