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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우리 동네 가게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릴 적 동네 어귀 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 이상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웃의 소식이 오가고, 따뜻한 정담이 넘쳐나는 말 그대로 공동체 소통의 교차로였던 것입니다. 한 여름 가게 앞 평상에 누워 잠들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동네 가게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무려 10만개나 되는 동네 슈퍼마켓들이 줄도산하게 생겼습니다. 대형 수퍼마켓(Super-Super Market) 때문입니다. SSM은 전체매장의 면적이 약 1,000 평방미터에서 3300평방미터(300평~1000평)에 이르는 준대규모 점포를 의미합니다.



2009년 5월 현재 국내에는 약 456개의 SSM이 있습니다. 이 중 GS슈퍼마켓 이 108개, 롯데슈퍼가 115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136개, 그리고 기타중견업체가 97곳 정도 됩니다. 또 대형마트 1위인 신세계 이마트에서는 ‘이마트 에브리데이’라는 명칭으로 100평 규모의 SSM을 연내에 30~40개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2006년부터 급성장해 온 SSM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로 동네 상권을 황폐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동네 슈퍼마켓 뿐만 아니라 빵집, 문구점 등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들이 연이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 의류까지 취급하고 있는 대형마트로 인해 남대문상권과 의류 도매상까지 줄도산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SSM의 문제는 이뿐 만이 아닙니다. 대기업 소유의 SSM은 지역 제조업체의 물건을 입점시키지 않고, 대부분 중국의 PB상품을 대량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제조업체의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네 경제 전체가 파산날 판입니다.

또, 제조업체 및 입점기업에게 입점수수료 6.5%, 판매부수수료 20% 이상을 요구하거나 물품판매금은 40일 이후에 결재하는 등 불공정한 거래를 통해 제조업의 경영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반면 Big브랜드나 외국기업의 경우에는 수수료 없이 입점하여 국내 중소제조업체만 피해가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이미 많은 분들도 알고 계시겠지만 대형마트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분들도 대부분이 입점업체에서 비정규직형태로 고용한 분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한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갑니다.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높은 수수료에 대한 부담 때문에 납품시 기존 판매액보다 수수료 부담액을 추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소비자에게로 전이되며, 약 5%정도 더 비싼 값에 물건을 사게 됩니다. 유통이 제조업의 판매 경로를 장악하고 독점권을 행사하며 제조업체의 목을 조르고,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된 것입니다.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제한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SSM에서는 국내 제조업체가 만든 인기 제품을 배제하고, 이를 유사하게 만든 PB상품으로 대체해서 팔고 있습니다. 즉,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SSM에서 특정 제품을 사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상점 중의 일부마저 대기업들이 가게를 팔라고 종용을 하거나, 안 팔 경우에는 임대료를 2-3배 올려주면서 거리로 내쫓고 있다. 이렇게 비도덕적으로 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인지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경배 전국슈퍼마켓연합회장님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무너집니다. 어린 시절 평화시장에서 가족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저에게 그 안타까움은 천근 만근의 아픔으로 느껴집니다.

외국의 경우 대형마트는 도시 외곽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상권의 형성 등의 부수적 효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 미국, 일본, 프랑스와 같은 주요 국가는 대기업의 지역 진출시 ‘지역경제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공룡같은 SSM이 도심 골목까지 진출한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이미 대형 할인마트로 인해 전국의 재래시장 5,000개 가운데 3,300여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1년 사이에 자영업자 30만명이 폐업신고를 했습니다. 이건 거의 쓰나미 수준입니다. 이런 실태를 방치하면서 무슨 ‘경제살리기’ 이고 무슨 ‘서민경제’란 말입니까.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일단 현행 등록제로는 SSM의 확산을 막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규모점포 입점시 중소유통․재래시장․지역경제 영향평가의 의무적 실시와 대기업의 SSM 진출을 제한할 수 있는 허가제 도입이 필요합니다.

또, 지방자치단체에서 대규모점포의 무차별적 입점을 방치하지 말고 각 지자체마다 지역실정에 맞는 입점 가이드라인을 제시, 이와 관련한 행정절차를 조례로 만들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SSM의 영업시간 및 품목제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안일 것입니다. 또, 이미 폐․휴업을 했거나 대기 중인 영세업자들의 업종전환과 생활 대책 마련을 위한 안전망 구축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SSM으로 인한 문제는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동네에서 수십년 간 운영해온 가게, 그 가게로 자식을 키웠고 술 한잔 사드실 수 있었던 우리 아버지가 문 닫으며 흘리는 눈물입니다. 다리가 퉁퉁 붓도록 하루종일 서서 물건 담고 계산하면서도 대형마트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벗어나지 못해 우리 어머니들이 내쉬는 한숨입니다.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람 사는 맛이 사라지는 파괴입니다.

제도로 대책을 세우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대한 공감과 확산이 먼저입니다. 블로거 여러분들께서 관심가져 주십시오.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