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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대한민국의 큰 울타리가 무너졌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의 큰 울타리가 무너졌습니다. 저의 넓고 큰 울타리도 무너졌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평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신념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큰 슬픔을 어찌 다해야 할지 살아남아 있음이 죄스럽기만 합니다.

1996년 김대중 총재님의 손에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과분한 기대와 애정을 표해주셨던 다정하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소명의 과정에 대통령님과 함께 할 수 있었음이 기쁨이었습니다. 지금 정동영의 정치는 온전히 김대중 대통령님께 빚진 것입니다. 빚진 자의 슬픔에 무릎이 꺾어집니다.

광주의 영령들을, 문익환 목사님을,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대통령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쁠 때 한없이 밝은 웃음을 주셨고, 슬플 때 더없는 울음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결국 이런 감정의 솔직함으로 더욱 풍요로울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그 솔직한 슬픔이 대통령님께 향해야 한다는 현실이 그래서 더욱 슬픕니다.

36년 전 8월 13일은 대통령님께서 사선을 넘어 생환하신 날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통령님의 삶 속에 오롯이 녹아있습니다. 후퇴하는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불꽃을 태우시던 대통령님의 말씀을, 글을 뵈면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밭을 일구고 그 밭에 ‘평화’와 ‘서민’이라는 두 그루 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통령님께서 40대에 주장하셨던 4대국 평화보장론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염원하셨던 서민행복시대는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다시 평화와 서민을 위해 민주주의라는 밭을 기름지게 가꾸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이 땅에 평화의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서민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대를 멀리서 나마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통큰 하나됨을 실현하겠습니다.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대통령님의 영전에 이 마음을 올립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이제 편안한 세상에서 이 땅이 다시 올곧게 만들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주십시오. 역사 속에서, 국민의 가슴 속에서, 그리고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 아침 햇살에서, 저녁 노을에서 항상 대통령님을 느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2009년 8월 18일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