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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의원회관

한일 합작, 용산의 희망을 만났습니다.

- 남일당에서 만난 한국 일본의 희망들 -


9월 23일 남일당을 찾았습니다.

남일당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건물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사람공동체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247일째, 어김없이 7시 추모미사는 진행되었습니다. 유가족과 전철연 회원들, 그리고 용산참사를 아파하는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미사시간을 10분 남기고도 30여명 남짓...

결국 용산참사는 망각과의 싸움인데, 그 싸움에서 밀리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10분은 상실감을 포만감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십 수명의 젊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습니다. 처연한 성가소리와 함께 다시 희망을 안은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쯤에 홍세화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언제나처럼 검소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깊이 자리잡은 슬픔은 숨길 수 없으신 듯 했습니다.

사람 人자는 서로 기대어 선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더불어 삶’이 사람의 기본인데, 이를 져버린 용산참사의 참혹함에 대해 신부님께서 성토하셨습니다. 안동에서 올라오신 신부님이셨습니다. 그렇게 또 247일이 저무는가 했는데, 마칠 즈음 공지시간에 이강서 베드로 신부님께서 환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

“반가운 분들이 오셨습니다. 일본 동경대에서 온 시카이 학생과 일행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미사시간이 다 되어 도착한 젊은 학생들이 바로 일본 분들이셨구나...

“어제 역사견학목적으로 방한했습니다. 용산사건을 오늘에야 알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오늘 온 만큼 친구와, 동지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이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사의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깊은 명복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 고맙고, 또 참 부끄러워지는 당당함이었습니다. 무언가 감사의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을까 해서 미사가 끝난 뒤, 통역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혹시 국회 방문 계획이 있으시거나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통역 선생님께서 “아까 의원님 오신거 같던데 학생들과 함께 잠깐 인사라도 드릴 수 있을까요?” 하십니다.

솔직히 그런 자리를 너무나 갖고 싶었던터라 ‘이런 횡재가!’...

분향소에서 분향을 마친 후 정동영 의원님과 일본 동경대 학생 6명과의 짧은 양자회담(^^)이 진행되었습니다.


정동영 : 안녕하세요! 학생들은 어디서 오셨지요?

학  생 : 저희들은 일본 동경대 학생들입니다. 이번에 저희들은 역사기행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동영 :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학  생 : 용산참사 얘기를 듣고 현장을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미사가 거행된다는 것을 알고 미사에 참석을 했습니다.
정동영 :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본 인상...어떤 느낌을...?
학  생 : 저희가 와서 말씀을 들으면서 8개월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는데 놀라왔고, 3천 페이지가 공개되지 않은 것에 놀라웠고...유가족들과 저희들의 관계랄까요?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동영 : 역사기행이라고 했는데 어떤 곳을 다녔습니까?
학  생 : 위안부 문제로 ‘나눔의 집’에 가서 1박을 하고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현장에 갔었고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인사동에 갔었습니다.
정동영 : 위안부 문제... 그 할머니들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그 전에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알았습니까?
학  생 : 여기 오기 전 저희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했습니다. 반성의 시간을 갖고요. 저희가 일본의 원폭피해박물관, 평화기념관과 나눔의 집에 가서 보면서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동영 : 여러분들 중에 야스쿠니 신사에 가본 사람이 있는지?
학  생 : 예.
정동영 : 야스쿠니 신사에 가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  생 : 그렇습니다.
정동영 : 야스쿠니에서 보는 위안부 문제와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는 양쪽 주장의 충돌인데 여러분이 역사기행을 찾아가는데... 여러분 동경대 학생들은 일본의 젊은 지성을 대표하는 학생들이고, 미래 일본의 주역이 되었을 때 과거 역사의 아픔을 딛고 진실을 찾아서 새로운 우애, 우정,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오늘의 방문이 굉장히 의의가 있습니다. 과거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을 했는데 오늘은 EU라는 틀 속에서 협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문화적,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공통점이 많은데 아직도 갈등과 상처로 과거에 발목이 묶여있고 마음을 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수상과 오카다 외상과도 친분이 있는데 3년 전 대선 때는 오카다 외상이 와서 저를 위해서 많은 응원을 해 주셨습니다. 새로 들어선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자민당 정부보다 아시아를 중시하고 한일관계를 좀 더 미래로 전진하기를 바라는 비전과 철학에 기대가 큽니다. 여러분들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학  생 : 예 감사합니다.
정동영 : 잘들 가세요.

 

참 장한 학생들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일본의 민주청년동맹의 회원들이었습니다. 아직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감정적 거리가 존재하지만, 이미 전진할 희망은 우리 속에 와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우리 대학생들은 지금 어디있을까... 하는 더큰 아쉬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쉬움이 희망으로 바뀌는 데는 고작 2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남일당 건물을 돌아서는데, 10여명의 학생들이 둥글게 서있었습니다. 미사시간 정동영 의원님 바로 옆과 뒤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의원님이 다가가셨습니다.

“장하세요. 정말 잘 오셨어요.”
서울대 농대 같은 학회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정동영 : 그래, 오늘 현장에 와보니 기분이 어때요?
학  생 : 말로만 듣고 언론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말을 잘 잇지 못했습니다.

학  생 : 이건 정말 비상식적인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동영 : 그래요. 이건 비상식이고 몰상식이지요.
학  생 : 실감이 납니다. 남은 가족분들도...
정동영 : 인간의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너져버렸습니다. 너무 큰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금 인간, 진실, 치유를 위한 용산참사해결 3대 법안을 준비하고 있어요.



법안을 하나씩 하나씩 설명하셨습니다.

“자주 오세요.”, “자주 오겠습니다”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집으로 오는 발걸음은 항상 무거웠습니다. 그 발걸음보다 더 무거운 짐이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용산참사 247일을 마감하는 시간은 무거움과 함께 따뜻함을 안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기적이다, 공동체를 모른다... 숱한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이 땅 젊은 대학생들은 변함없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에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다하는 진정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247일을 마감한 용산에는 248일째의 무거움이 찾아왔습니다.
그 다음은 249일, 그 다음은 250일...

용산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 아픔과 분노와, 그 속의 희망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용산참사는 망각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용산참사는 방관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