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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연세대 강연-상식에 대한 반란, 자기지배의 리더십

정동영 의원은 9월 30일 오전 11시, 연세대 상대 각당헌에서 '상식에 대한 반란, 자기지배의 리더십'을 주제로 리더십센터 초청 강연을 했습니다. 이 날 강연에는 약 500여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빛내주었으며, 시종일관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강의에 참여해 주었답니다. 특히 질의응답시간에도 단 한치의 주저함 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며 정동영 의원에 대한 평소 자신의 생각에서부터 등록금 문제, 한국정치의 문제까지 다양한 의견을 솔직히 밝히는 담대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답니다.



강연히 끝난후 포토타임때에도 많은 학생들이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셔서 즐겁게 추억을 남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날, 강연에 참여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기회에 더 소중한 인연으로 다시 뵙게 되길 기대합니다.
다음은 이 날 강연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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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동영입니다.
오늘 저를 처음 보신 분들도 있을 거고, 혹 한 두번 본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소연을 하나 하면서 오늘 강연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참 억울한 게 하나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고생 한 번 안하고 큰 사람 같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보이나요? 여러분보다 앞선 세대 사람들이 나 고생 좀 했네 그러면 솔직히 우리도 고생 많이 합니다. 하는 생각에 좀 짜증도 나고 그러시지요? 특히나 요즘 정치하러 나오는 사람들마다 너나 나나 고생했다고 얘기해서 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잡은 마이크 인데 오늘 저도 할 말은 좀 하겠습니다. 저도 진짜 고생 많이 한 사람입니다. 제가 말하면 못 믿으실까봐 증인 한분 모시겠습니다. 보시지요.

*요기서 아래 동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한 두번 이야기해서 바뀌겠습니까 마는 어쨌든 제가 청년시절 평화시장에서 옷장사도 하고 어머니 모시고 힘들게 살았다는 느낌 정도는 전달됐길 바랍니다. 그냥 TV를 통해 보시던 피상적으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요?

제가 고생한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상식이 가지는 함정,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의 위험에 관한 것입니다.

상식이 뭘까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이해, 판단, 사리분별 이런 거지요. 그런데 과거에는 이같은 상식이 100년, 200년 오래 지속되었지만 지금은 기술의 진보와 세계화, 그리고 사회구조의 변동 등으로 10년 20년만에 뒤집히는 고정관념이 많습니다. 그 고정관념 속에 상식처럼 알려진 것들도 많지요.

여러분,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입니까, 백인입니까? 역도산은 일본인입니까, 한국입니까? 터키는 아시아입니까, 유럽입니까? 저 정동영이 호남사람입니까, 영남사람입니까?

오바마는 흑인과 백인을 넘어 미국인이라고 했습니다. 역도산은 세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터키 문화는 동서양이 융합된 문화입니다. 저 정동영은 호남과 영남 모두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이렇듯이,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주입된 이분법적 구분과 관념을 깰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에서 얼마 전 저를 ‘용산해결사’라고 지칭을 했습니다. 지난 1월 20일 용산에서는 삶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철거민 5분과 진압에 참여한 경찰 1분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혹시 용산참사에 대해 아시나요? 용산참사와 관련해서도 우리 속에는 선입견과 편견이 가득합니다. 우리 사회의 철거민들의 아우성이다, 또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용산참사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용산참사는 상가에 세를 들어 장사하시는 분들의 문제였습니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서 인테리어 비용이나 권리금 등을 보상받지 못하게 되어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진 것입니다. 장사 잘 하고 있는데 재개발 지역이 되어서 생계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먹고 살게만 해달라고 요구하다 숨진 분들입니다.

혹시 부모님이 식당이나 가게하고 있는 분들 있나요?
희생자 가운데 연세가 제일 많으신 이상림 할아버지는 용산에서 100평도 넘는 2층 가게에서 맥주 호프집을 하시는 분이었고 50대의 양회성 사장님은 10년 넘게 삼호복집이라는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장사하시고 사업하시는 여러분들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여러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8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고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은 병원 장례식장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여러분과 같은 대학생이 될 친구들입니다. 너희와 상관없는 저 밑바닥 인생 이야기야, 너희들은 관심 꺼. 만일 이런 편견과 상식이 존재한다면, 그 상식은 깨져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상식의 틀을 깨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가능하고 창조가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의 튀는 재주와 끼를 발전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여러분들을 가둬두고 있는 상식을 깨버리십시오! 이렇게 편히 살아온것 같은 정동영이도 고생많이 했구나, 용산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겠구나, 이런 상식에 대한 반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저의 첫 주제였습니다.

무조건 깨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기존의 상식을 깨고 새로운 창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지배의 리더십’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제가 어떻게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인지 작전을 짜봅시다.

첫째,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십시오. 꿈이 인생을 지배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차이가 뭔가 보니 저는 6.25 전쟁 이후 태어난 세대이고, 여러분은 87년 6월 항쟁 이후이거나 직전세대라는 점이네요. 그냥 보기에는 제 나이가 몇 살쯤 되어 보이나요?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단지 휴전상태에 있을 뿐이지요. 여러분 혹시 휴전협정일을 아십니까? 53년 7월 27일인데, 저는 이 날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생일이거든요. 저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불안정한 평화, 즉 정전체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든 바꿔내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여러분 세대가 속한 87년 6월 항쟁은 우리 역사 속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역사 2000년래 최대 사건으로 고려 중기의 묘청의 난과 1894년 동학혁명을 꼽았습니다. 오늘 저에게 또 하나의 민족역사 최대의 사건을 들라면 그것은 87년 6월 항쟁입니다.

6월 항쟁은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선배인 경영대 86학번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기폭제가 되었고 연대생들의 참여가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고 오늘 우리가 숨쉬는 민주주의의 공기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연세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도 될 만큼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서로서로에게 힘찬 박수를 한번 보내주십시오.

6월 항쟁의 중요성을 우리 스스로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에 비견된다고 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 역사상 민중봉기는 많았지만 성공한 것은 단 하나, 6월 항쟁 뿐입니다. 묘청의 난과 동학혁명도 실패했습니다. 4.19 민주혁명도 5.16 군사쿠데타로 1년 만에 붕괴됐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역사는 6월 항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께 6월 항쟁이 낯설고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6월 항쟁은 여러분에게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했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1901년생이고 아버지는 1921년생이십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식민지 시대를 사셨지요.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식민지 백성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여러분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자기 인생을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자기를 지배할 수 없는 사람은 경기를 지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자재로 자기 몸을 놀릴 수 있도록 체력 단련을 해서 완벽하게 자기를 지배할 수 있을 때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여기에는 철학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말대로 자기지배를 통해 세계를 지배한 사람 가운데는 김연아나 박지성, 박태환, 양용은 선수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세대 때는 피겨나 축구, 수영, 남자골프 같은 종목에 대해 ‘우리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상식이었지요. 그 상식을 깨고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지배했습니다. 심지어 TV광고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웃음)

요즘 여러분이 토플 120점 만점에 100점 이상, 학점 3.8 이상, 교환학생 준비, 봉사활동, 거기다가 인턴까지 - 그런데 인턴 중에는 커피인턴/카피인턴이 많다면서요? - 이런 걸 또 ‘스펙(spec)'이라고 한다면서요? 여러분 몸이 두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대학생활이 분주한 것 역시 자기 인생을 지배하기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라고 생각합니다.

두어달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뉴욕타임즈 1면 톱에 ‘핵 없는 세계’에 대한 한 대학생의 논문이 실려있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논문의 저자는 1983년 당시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콜럼비아 대학 4학년에 다니던 오바마 였습니다.  그가 Sun Dial 이라는 대학 잡지에 기고한 글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지금 44대 미합중국 대통령인 오바마 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몇 살이시지요? 오바마는 그때 22살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꿈이 여러분을 대통령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그러한 견고한 철학과 의지를 다져야할 때입니다.

제 인생에 두 번의 중요한 선택이 있었습니다. 먼저 기자입니다. 제가 MBC 기자 출신이잖아요? 제가 기자가 된 것도, 중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언론은 세상의 목탁이다’라는 말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을 안고 결국 기자가 되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때 신문기자가 더 쎘는데, 한국일보는 떨어지고 MBC 기자됐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방송 힘이 더 쎄지니 그때 한국일보 떨어진것도 실력이었구나 싶네요.(웃음)

제가 MBC 기자 할 때는 솔직히 인기 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삼풍백화점 기억하시지요? 그런데 정치인이 되고 나니 또 그렇게 욕을 많이 들을 수 없더군요. (웃음) 그렇지만, 저는 제가 정치인이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왜 정치를 하게 됐는가? 하고 저에게 물으신다면, ‘제대로 된 기자생활을 할 수 없어서’라고 대답하겠습니다. 1978년부터 95년까지 18년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대를 기자로 보냈습니다. 정권이 안 바뀌니 기자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취재한 기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때문이었습니다.

제가 5.18때 취재했던 리포트도 끝내 보도되지 못했습니다.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러한 권력 아래에서는 언론은 꼭두각시 인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굴곡이 있었지만 전 여러분앞에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전 제 인생을 지배하려 노력했고 그 노력에 대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그러하기를 소망합니다.

두번째, 자기지배의 리더십은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는 노력과 동시에 나를 둘러싼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환경에 순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도전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인간의 고귀함이 있는 것이지요.

저는 유신학번 세대입니다. 제가 대학 1학년이던 72년 10월 17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언론․출판․집회․결사․신체의 자유를 몰수당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도 빼앗겼습니다. 대통령을 비난하면 징역 3년, 세 사람만 모이려고 해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머리가 길면 경찰이 머리를 가위로 자르고 미니스커트 길이를 자로 재서 벌금을 물리고, ‘아침이슬’ 같은 노래는 금지곡이고, 책도 수천권씩 금서가 되고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아마 그 기준이면 여기 남아날 학생들은 별로 없어보이네요.

이렇게 말할 자유, 머리 기를 자유, 모일 자유, 책 읽을 자유가 없는 지옥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몰래 모여서 금지된 노래를 부르고 금서를 읽고 이 야만적인 독재체제를 어떻게 하면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하는 음모를 꾸미는 일 등이었습니다. 물론 번번이 우리가 깨졌지요. 그러나 70년대와 80년대의 어둠의 세력을 몰아낸 힘은 대학에서 나왔습니다. 결국 인간을 억압한 나쁜 정치의 지배가 끝난 날이 바로 87년 6월 혁명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세상에 무관심하다고 할지라도 세상은 결코 여러분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취직 걱정, 학점 걱정, 여친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여러분을 노려보고 여러분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요즘 이메일 뒤지고, 휴대폰도 감청하고 인터넷에 비판글 썼다고 미네르바도 잡아가고 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을 겁주고 여러분의 인생을 지배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6월 혁명은 이 나라의 주인이 대통령이나 정권을 잡은 세력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못박았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마음만 먹으면 여러분을 감시하는 정권과 체제를 얼마든지 바꿔칠 수 있습니다. 즉, 선거심판론이지요. 문제는 여러분의 관심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손으로 이 사회를 지배하십시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셋째, 상상하고 돌파하라. 한반도의 운명을 지배해야 합니다.

당장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머리 위, 상공 위에 구조적으로 짜여져 있는 한반도의 분단구조가 여러분 세대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앞 세대인 우리 세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결과제로 여러분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준 데 대해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분단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의 취직걱정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또 이 자리에 1, 2학년 학생이 있다면 여러분의 군대문제와도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여러분들의 삶 여기저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문제와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얼마 전까지 북한이 로켓 쏘고 핵실험 할 때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됐고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으로 치달았습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잘못돼서 국지전이라도 터지게 되면 한국의 국가 신인도는 곤두박질하고 증권시장도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반면, 최근과 같이  북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결실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한반도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방경제의 시대를 열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남한 경제는 경제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 가운데 두 부문에서 벽과 한계에 부딪쳐 있습니다. 출산율은 줄어들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며 땅값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조건 속에서 남한 경제를 또 한차원 올려 놓으려면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합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평화구조로 재편성해내면 북쪽의 1,200만명의 양질의 노동력과 국유화된 토지를 활용해 한국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같은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상상하라 돌파하라’입니다. 21세기는 상상력과 돌파력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꿈꾸고 얼마나 큰 열정을 쏟아 붓느냐에 따라 세상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광화문에서 개성으로 출발하는 출근버스가 떠났고 줄잡아 500~600대의 차량이 휴전선을 넘어 개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개성공단에서는 4만명의 북한 근로자와 1500명의 남한 엔지니어들이 함께 신발과 섬유, 화장품 용기, 자동차 부품 같은 것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원래 2000만평 규모의 3단계로 추진할 예정이었던 개성공단은 현재 1단계 100만평에 기반시설공사가 다 끝났고 그 100만평의 약 1/3의 땅 위에 106개의 공장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1단계만 다 입주해도 10만명이 넘고, 거기서 생산되는 총매출액이 북한 총 GDP와 맞먹게 됩니다.

원래 개성공단에 관한 합의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제 자랑을 조금 하면, 저는 2004년 7월 통일부 장관으로 가면서  당시 허허벌판이던 개성공단을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만들어내겠다고 작심을 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돌려서 냉전의 벽을 뚫어내자’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성공단 프로젝트 자체가 당시 정부 안과 밖으로 브레이크가 걸려 있었습니다. ‘속도조절론’이었습니다. 당시도 핵문제가 불거져 있었기 때문에 핵문제 해결의 추세를 봐 가면서 추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입장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을 추진하려면 미국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주 독립국가이지만 미국의 적성국가인 북한에 미국 기술이 들어있는 장비를 들고 가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미국 국내법이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피하고 공단을 건설할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장관 취임 한달 만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열쇠를 쥐고 있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만났습니다. 앉자마자 개성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의 진흙탕에 빠져 있던 럼스펠드 장관으로서 개성이 어디에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설명했습니다.

‘개성은 6.25 때 북한군 탱크가 밀고 내려오던 주요 남침로였다. 또 유엔군과 국군이 평양으로 밀고 올라갈 때 주요 통로였다. DMZ 바로 북방에 있는 개성 지역에는 북한의 장사정포병 부대가 밀집해 있다. 서울은 불과 이 포 진지로부터 40마일, 64km 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따라서 한미 연합사의 최대 우려사항은 어떻게 하면 북한군의 특이동향을 사전에 얼마나 빨리 알아내는데 맞춰져있다. 인공위성으로 초 단위로 사진을 찍어대고 정찰기를 띄우고 감청을 하고 각종 수단과 방법으로 조기경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북한 포병부대가 밀집한 지역에 가로 8km 세로 8km의 2000만평을 남쪽에 내어준다는데 이것은 최소한 북한 내부의 동향을 알아내는 데 24시간 내지 48시간 이상의 조기경보 기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미국이 반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개성에 공단지으면 전쟁나기 어렵다 였습니다.
럼스펠드 장관은 내가 설명하는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경청했습니다. 럼스펠드 장관은 다음날 부시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안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그 이후 미국정부는 개성공단 추진에 적극 협력으로 돌아섰습니다.

지금 정부는 개성공단이 앞선 정부에서 기획하고 추진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확대, 발전 시키는 데 별 의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 결정의 기준은 국익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중소기업의 돌파구를 열고 여러분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이라면 마땅히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전 미국에 있는 National Press Club에서 북핵문제 어떻게 풀것인가를 주제로 연설을 하고 왔습니다. 오바마-김정일 직접회담과 워싱턴-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그리고 개성공단을 특별 평화구역으로 선포할 것을 제안하고 왔습니다. 


 

외교문제는 대통령의 아젠다입니다. 한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고 북한 내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이 말은 김정일 위원장을 대화상대로 간주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북한을 방문해 여기자를 데리고 나온 클린턴 대통령에게 듣게 된 얘기일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이 1년만 더 임기가 있었더라면 한반도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후배 대통령인 오바마에게 김정일 위원장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할 것을 조언하지 않았을까요? 제 추론이 틀리지 않았다면 남은 것은 시기 문제일 것입니다.

자, 오바마 김정일이 만나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미국은 월남전에서 10년 동안 700만톤의 폭탄을 퍼부었으나 항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클린턴 대통령 때 베트남과 악수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열었습니다. 저수지가 썩은 물로 고여있을 때 아무리 새로운 물을 흘려 넣어도 그 물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 제방을 터뜨려야 합니다. 한반도의 분단구조는 저수지의 제방과 같습니다. 오바마와 김정일이 만난다는 것은 제방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서로 증오하고 적대하고 미워하는 대결시대로부터 서로 손잡고 돈벌고 취직하고 함께 번영하는 시대로 전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한국과 한국인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일어서서 제방을 무너뜨리는 일에 힘을 보태야 합니다. 1990년 동서독 통일을 이룩한 콜 수상은 자서전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눈 앞에서 역사가 기회의 문을 조금 열어주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리는 재빠르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통일을 이루었다’고 썼습니다. 지금 역사의 문이 우리 앞에도 열리려고 합니다.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행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유럽에 배낭여행 갈 때 비싼 비행기 대신 기차 타고 개성 거쳐서 만주로, 시베리아로 유럽에 간다면 값도 싸고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상식은 북쪽으로는 못 간다는 것이었지만 우리가 판을 바꾸면 북방이 열립니다. 여행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동북3성과 블라디보스톡,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등에서 비즈니스도 하고, 취직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되면 군대를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바꾸게 될 것입니다.

독일과 베트남의 경우, 전쟁과 대결 시대에는 양쪽 합쳐 300만도 넘던 군대가 통일 이후에 각각 30만 씩으로 줄었습니다. 우리도 남북 합쳐 180만이나 되는데, 남북이 각각 30만씩으로만 줄여도 여러분 군대 걱정이 해결될 것입니다.

서울역이 여기 신촌하고 가깝지요? 여러분, 서울역에서 프랑스 빠리로 가는 KTX 기차표를 사는 상상을 여러분 해 보셨습니까? 이 일이 실제로 1900년대 초에는 가능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나혜석 씨가 서울역에서 기차표를 사서 유럽여행 가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 일이 곧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세상에서 그렇게 됩니다.

제가 앞에서 우리 세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여러분 세대에게 고민을 안겨준 데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함께 관심을 갖고 우리 시대에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여러분과 나는 동지가 되는 셈이네요.

6월 항쟁 이후 여러분 세대의 최대 과제는 한국을 세계 최고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 세대의 과제는 식민지로부터 국가를 되찾는 것이었고, 우리 세대의 과제는 민주화였고,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었습니다. 감히 세계최고의 나라가 되겠다는 것은 꿈꾸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대는 가능합니다.

앞에서도 인용한 김연아, 박지성, 박태환, 삼성 같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골드만삭스는 2030년이 되면 한국이 미국 다음의 G-7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갖출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망에는 북한의 천연자원과 인력을 활용한다는 전제가 붙어있습니다.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리카의 가나를 방문했을 때, ‘1960년 가나와 South Korea는 같은 수준의 나라였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South Korea는 어떻게 발전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앞 세대가 이룩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정신적 가치, 즉 ‘한국혼’을 또 하나의 기둥으로 세워서 세계 최고의 모델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세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위대한 세대, Great Generation 이야말로 여러분 세대가 꿈꾸어야 할 목표이며 도전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을 깨버립시다!
내 인생을 스스로 지배합시다!
나를 둘러싼 사회를 지배합시다!
우리를 둘러싼 한반도를 지배합시다!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를 지배합시다!

상상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돌파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