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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김대호 소장님의 비판에 답합니다.


제가 반성문을 발표한 이후 상당한 반향이 있었습니다. 공감하고 격려해주신 분들도 많았지만 과거의 굴레로부터 혼자서 빠져나가겠다는 비겁한 행위라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참여정부의 실정을 에둘러 비판한 셈이어서 참여정부에 애착을 가진 분들이 언짢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하지 못하고 반성문을 발표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난 대선에서 실패한 후보로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이명박 정부의 폭정 아래 신음하는 국민들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나름대로 처절하게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발표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대한 올바른 반성은 미래로 나가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실패의 원인을 잘못 짚었을 수도 있고, 반성의 내용과 깊이가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토론을 통해서 보완해나갔으면 합니다. 단순히 저 개인의 잘못 만이 아니라 민주진보진영의 부족했던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반성문이 이런 논의를 촉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 소장님이 저의 반성문에 대해 깊이 있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해주신 것을 환영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소장님의 비판에 성실하게 답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소장님의 가장 신랄한 비판을 인용합니다. “내가 반성문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정동영이 뱉어 놓은 말 중에 있는 현저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은 아예 언급을 회피한 주요한 정치행위이다. 완전히 빠져있는 반성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도 만들어 주었고, 지금도 자신을 민주당의 맹주로 만들어 준 상식 이하의 민주당 대의 구조에 관한 것이다. ‘민주’라는 간판을 부끄럽게 하는, 전북과 호남의 과잉 대표성을 보장하는 상식 이하의 대의 구조에 대한 혁파 의지이다.”

민주당의 대의구조에 대한 지적은 올바르며 아픈 내용입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의 근본적 혁신을 위해서는 정체성과 노선을 명확히 하는 것과 함께, 당내 민주주의의 원칙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단 잘못된 사실 인식에 대해서는 바로 잡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를 하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먼저 제가 “전북과 호남의 과잉 대표성”에 입각해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첫째, 저는 2007년 경선 당시 경선룰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여러 후보들 간의 협의의 결과로 룰은 만들어졌고, 제가 선두로 앞서나가자 경선이 진행되는 와중에 숱하게 룰이 바뀌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부산과 경남 지역 경선 이후 아예 전국 순회 국민경선이 중지되고 남은 지역은 합쳐서 진행될 정도의 경선파행이 있었습니다. 둘째, 저는 울산, 부산, 경남 등 영남지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제주에서 시작하여 영남에서도 모두 1위를 하니까 저에게 대세가 온 것이지 결코 호남 지지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현재 민주당의 대의 구조는 저도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제가 당의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시절 전국대의원, 지역위원장 등 모든 당직은 당원이 선출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다릅니다. 당헌에서 보장된 당원의 선거권이 당규에서는 사라졌습니다. 당원이 참여할 공간이 없습니다. 또한 호남지역 과대대표성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우리당 시절 전국의 대의원은 100% 지역인구비율로 그 수를 정하여 선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100의 30을 당원규모, 직전선거에서의 득표율 등을 반영하여 책정하고 있습니다. 기초 광역단체장, 기초 광역 의원 등이 모두 당연직 대의원으로 되어있으므로, 결국 현재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말씀하신대로 호남지역의 편중성이 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이러한 구조들이 혁파되기를 바라며 그를 위해 역할을 하려 합니다. 전당원투표제를 도입하여 당원이 대표 선출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대의원 구성 비율을 지역 인구비율을 적용하도록 하여 전국정당의 기초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7월 31일 영남지역의 지역위원장들이 모인 ‘영남민주회’에서 김태랑 전 최고위원이 제시한 지역인구비례에 의한 대의원 구성 주장은 저와 사전 협의를 통해 작성된 내용입니다. 아마도 김대호 소장님 입장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소장님이 제기하는 중요한 비판은 제가 얘기하는 담대한 진보의 비전에 대한 것입니다. “‘담대한 진보’를 떠받치는 역사/현실 인식의 핵심은 1997년 말, 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 개혁 이행’ 각서가 오늘날의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중략) 이런 역사/현실 인식은 결국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에 대한 총체적 반대와 보편적 복지를 대안으로 내세우게 된다.”

양극화의 원인에 관해서 학술논쟁을 할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의 양극화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지나친 격차와 기득권이 과보호되는 불공평한 사회구조에 기인 한 바가 크다는 논지에 공감합니다. 저도 양극화의 원인이 IMF위기 이후의 시장개혁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이후에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최대의 문제로 떠오른 것은 사실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장개혁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 과잉과 시장과신이 문제였습니다. 시장을 공정하게 만들고,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공정한 경제’와 ‘보편적 복지’를 강조합니다. 이것이 지금 민심의 요구라고 믿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추구했던 ‘반칙과 특권이 없고,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향해서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당연한 목표가 아닌가 합니다.

소장님은 “정동영의 반성 수준은 심히 실망스럽다”면서도 “진짜로 겸손해지면 꽤 괜찮은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대를 표시해주었습니다. 진짜로 겸손해지겠습니다. 반성하고, 배우겠습니다. 당의 개혁과 국가비전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 나갑시다. 

2010. 8. 20

정   동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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