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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박근혜, 한미정상회담서 미국에 끌려가지 말아야”

 

[인터뷰-①] 정동영 “박근혜, 한미정상회담서 미국에 끌려가지 말아야”

"개성공단은 조기경보기능 군사적 가치...안보 부담 늘어나"

 

2013.05.02  정성일, 박상희 기자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착잡합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아직 희망의 끈은 있습니다. 끈을 놓지 말고 개성공단을 살려내야 합니다. 살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이 다 개성공단이 죽는 걸 원하지 않지 않습니까. 폐쇄해서 남과 북 모두 좋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문제는 대화의 장이 안열리고 있다는 겁니다. 열리기만 하면..."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개성공단이 문을 연 2005년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남과 북을 오가며 산파 역할을 했다. 남북협력의 상징이자 가늠자였던 개성공단이 문을 연 지 채 10여년이 지나지 않아 폐쇄 위기에 처해있는 만큼 그의 착잡한 마음은 쉽사리 가늠이 됐다. 하지만 정 고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30일 오전에도 임동원,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박지원, 문재인 의원 등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개성공단에 관여했던 인사들과 회동을 가지고 폐쇄위기에 처한 개성공단과 관련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모인 인사들은 모임 후, 박근혜 정부를 향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내용을 조속히 공개하고 역대 정부가 북한과 합의했던 사항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것을 제안했다. 또 비핵화와 평화협정체결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고위 당국자회담과 개성공단 해결을 위한 실무회담을 제안할 것을 촉구했다.

- 오늘(30일) 모임에서는 발표된 내용 외에 추가적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됐습니까.

"개성공단을 살리기 위한 평화회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시민사회와 정당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하기 전에 한미정상회담에 바라는 내용도 발표할 계획입니다."

- 한미정상회담에 바라는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미국에 대해서는, 북미대화를 촉구함과 동시에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거에요.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강대국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개성공단을 살리려면 미국에 가기 전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내용을 가지고 가라는 게 핵심입니다. 개성공단을 닫고 평화를 만들 수 없어요. 오늘 모임에서는 개성공단의 군사적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 됐습니다."

- 정부가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을 내렸습니다. 남은 사람들의 인도적 상황의 악화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향후 남북관계에서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 결정은 실책이죠. 큰 목적과 작은 목적이 있을텐데, 큰 목적은 개성공단을 유지 발전시키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고, 작은 목적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죠. 그런데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국민들이 위협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았어요. 언론보도도 부정확했습니다. 식량이 떨어져서 쑥을 뜯어먹는다든지 하는 황당한 보도도 있었죠. 황당한 정책결정, 황당한 선택이었습니다."

- 박 대통령이 북에 대화를 제안할 때 야당에서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급작스레 시한을 정해 북에 대화제의에 대한 답을 내놓으라고 하고, 곧바로 철수결정을 내렸습니다. 5월 7일 한미정상회담 일정이 잡혀있고 이후에 논의가 진전될 수도 있었는데, 좀 급작스러운 느낌입니다.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어쨌든 3월까지는 초기 관리를 침착하고 차분하게 해왔다는 게 정평인데,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의 방한을 전후로 해서 뭔가 좀 꼬인 것 같습니다."

- 급작스러워서인지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해서는 왜 그런 정책결정이 있었는지 뚜렷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 문제와 관련해서 아쉬운 건, 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일 때 이미 핵문제가 진행되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 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이명박정부 5년은 이랬지만 새정부는 새롭게 해볼 의지가 있다는 신호를 북쪽에 줄 수 있었죠. 그런데 그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부터 북한의 로켓발사, 핵실험과 UN의 대북제재, 한미 군사훈련이 맞물려서 계속 이어졌어요. 그 불똥이 개성공단으로 튀어버린 것이지요. 쉬면서 가닥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남북관계에 파도가 닥친 것이죠. 그러다가 지금 덜컥수가 나온 것입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항상 신뢰를 강조하는데,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도 큰 그림보다는 한 스텝 한 스텝 차곡차곡 밟아가는 방향을 선호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개성공단 협의를 제안했는데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런 결정을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하자고 했는데 안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또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하자고 하면 그게 되겠습니까. 이미 그건 끝난 이야기죠. 그러면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포괄적 접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MB 5년과는 다르다' '물건 사고 팔고 왕래하자'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 있다 논의하자' '개성공단 다시 돌리기 위해서 논의 위한 회담하자' '우선 장관급회담 전에 실무회담하자'. 이게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포괄적 접근입니다. 이렇게 가야 반응이 오든지 하죠. 결론은 의지입니다. 개성공단 살리겠다는 목표와 의지가 있다면 길은 있습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살아날 수밖에 없거든요. 개성공단을 죽여서 좋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국내정치용이었다면 그 정도 보여줬으면 됐습니다. 이제는 실질적으로 살려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게 다 박 대통령의 업적이 될 수 있습니다."

- 현 사태의 해법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문제를 남북 간 소통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데요.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최근 북은 개성공단을 양보하고 우리는 금강산을 양보해 신뢰를 쌓는 것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발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지금은 제목만 있지 않습니까. 프로세스라면 절차, 일정표가 나와야 되는 거죠. 궁극적인 목표는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안정인데, 출발은 남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대화 자체가 안열리니 답답한 일이죠. 대화가 안열린지 실질적으로는 5년이 됐습니다. MB정부 5년 동안 6자회담 남북회담 모두 안열렸습니다. 완전히 적대시대로 돌아가버린 거죠. 그 5년 동안 누적된 적대가 지금 후유증을 낳고 있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새롭게 뭘 해보려고 해도 5년간의 유산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떠밀려가면 박근혜 정부도 손해고, 남북 모두 손해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위기인 남북관계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용기에서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도자로서의 용기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 아직 개성공단에 7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분들의 철수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7명이 다 철수하면 어떤 상황이 됩니까. 남북간의 모든 통신선과 모든 인적 교류와 모든 창구가 다 닫히는 깜깜절벽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남북간에 적십자회담이 시작된 1971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하겠다면서 대승적 제의를 해야지 어떻게 최후통첩식 제의를 합니까. 개성공단은 남북에 유익하고 앞으로도 키워나갈 것이니까 남쪽에서 외화벌이 운운한 것은 유감이다라고 하면서 소중한 싹을 위해 만나자고 점잖게 얘기했어야죠. 남북대화 역사에서 내일 아침까지 대답하지 않으면 중대조치하겠다고 한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이건 황당한 결정입니다."

- 남아있는 7명이 꺼져가는 대화의 마지막 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물밑 접촉의 연결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통일부 차관을 지낸 홍양호 씨가 개성공단관리위원장으로 나가 있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북 땅을 밟고 있는 건 이들 7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 뭔가 연결선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북쪽에서도 쫓아내려고 하지 않으니까 본인들이 남아 있으려면 얼마든지 남을 수 있어요."

-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MB정부 5년과 달리 우리는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신호가 북측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상대로 신뢰할 만 한가라는 의문을 북한이 가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해법이 있겠습니까.

"최고지도자간의 소통만이 남과 북에서 뭔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7.4공동성명은 박정희 김일성, 남북기본합의서는 노태우 김일성,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한반도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의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 정 전 장관을 비롯해 앞서 남북대화에 관여했던 분들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양쪽 귀로 들어야 합니다. 한쪽은 참모들 의견을 듣고, 한쪽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반대편에 있지만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 참석자 면면을 보면 북한과 대화를 해봤거나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 없어요. 딱 한 명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죠. 2002년 평양에 갔다 왔지 않습니까. 나머지는 김장수 국방장관이 수행원으로 가서 악수한 게 유일하고, 북에 가본 일도 없고 대화를 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그쪽 참모들 이야기만 들으면 실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야당에는 경험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남북관계는 초당적으로 가야지요."

- 혹시 정부에서 도움이나 자문을 요청한 일이 없었습니까? 앞으로 그런 요청이 있다면 응하실 생각은요?

"그런 제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요청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야죠. 민족문제이지 않습니까."

- 통일부 장관 시절을 비롯해 북측과 대화를 많이 하셨습니다.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지기 쉬운데, 직접 대화를 해본 당사자로서 느끼셨던 북한의 특징은 어떤 게 있었습니까. 그리고 북한과 대화할 때 주요하게 봐야할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첫번째,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80년대에 북한에 갔다와서 펴낸 책 제목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어요. 북한의 지도자들도 당국자들도 사람입니다. 두번째, 북한의 행태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게 많지만 그래도 그속에 그 나름대로 자기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전략이 있어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대로 '이럴 거다'라고 생각한다거나, '저 사람들은 이런 거다'라고 선규정해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 인터뷰 시작할 때, 개성공단의 군사적 가치에 대해서 오늘 회동 때 얘기를 나누셨다고 했는데,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개성에 있던 북한 군부대 2개 사단과 포병여단 등이 송악산 뒤쪽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경비병 정도밖에 없어요. 휴전선 155마일에 걸쳐서 양쪽이 철통같이 대치하고 있는 게 거기만 뻥 뚫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들의 취약요소에요. 그걸 다시 앞으로 전진배치한다면 우리에게도 안보 부담이 됩니다."

- 안보측면에서 보자면 양측 모두 부담스러운데,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겁니까.

"2000년 8월과 2004년 8월의 장면이 생각납니다. 2000년 정주영 회장이 개성공단과 관련해 3단계 그림을 가지고 방북을 했어요. 공단 800만평에 근린시설까지 포함하면 2000만평을 만들겠다는 거죠. 김정일 위원장이 '좋다. 몇 년 걸리냐'고 묻자 정주영 회장이 '착공해서 8년 걸린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주영 회장이 '2000만평이 돌아가려면 노동력이 35만명이 필요한데 이 인력을 어디서 구하냐'고 하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하는 말이 '아까 8년 걸린다고 했죠? 우리가 6.15공동선언을 발전시켜 나가면 남북관계 계속 발전되고, 남과 북의 군대가 너무 많으니까 그 단계가 되면 인민군 군복을 벗겨서 한 30만 명을 공장에 보내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북한 지도자가 그런 생각했다는 걸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가아죠."

- 2004년 8월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 때면 개성공단이 아직 가동되지 않았을 때인데요.

"그 때 미국 국방부에서 제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위원장 자격으로 럼스펠트 국방장관과 마주앉아서 '개성공단 세일즈 하러 왔습니다' 했어요. 미국은 그 때 개성공단에 반대했었는데, '대치상태인데 북에다 공장을 짓냐, 속도조절해라'고 하더라고요. 개성공단 터는 닦아놨는데 공장은 아직 못들어가던 때에요. 한미연합사의 가장 취약점이 뭡니까. 종심이 짧다는 거죠. 휴전선에서 서울까지 40km밖에 안되요. 북한의 포병 화력이 수원까지 갑니다. 그러니까 인공위성으로 사진 찍어서 영상정보 취합하고 정찰기 띄워서 음성정보 감청하고 인적정보 분석하고, 수천명의 인력이 달라붙어서 분석해요. 북한군의 특이동향을 사전에 알아내기 위해서죠. 조기경보기능이에요.

대결상태라고 보면 개성은 적지 아닙니까. 적지의 땅을 2000만평 내준다는데, 그건 조기경보기능을 최소한 24시간 48시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 속도조절하라고 하고 반대하냐고 럼스펠트에게 얘기한 거죠. 그러니까 럼스펠트가 '미스터 정 말이 맞다' 하고는 다음날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부시가 승인해서 적극적으로 미국이 지원한 겁니다.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도 너무 속도가 빠르다고 몇 번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만일에 인질사태가 나면 어쩌려는 거냐는 우려죠. 그래도 저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돌맹이 하나 만들어서는 바람 불고 폭풍치면 날아가지만, 집채 같은 바윗덩어리를 만들면 이게 오히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5년동안 묶여 있었던 게 더 아쉬운 겁니다. 원래 완공목표는 2012년이었는데, 면적기준으로 보자면 현재는 800만평 공단에서 30만평만 돌아가는 거예요. 원래 목표대로 됐으면 개성공단 하나가 북한 전체 GDP보다 커질 수 있었어요. 그랬다면 북한도 그걸 폐쇄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적으로 하면 일자리 문제나 경제성장 문제도 출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없어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