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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나는 왜 스웨덴에 가는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스웨덴에 대해 자세히 모르시는 분들도 이 말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만큼 스웨덴은 이상적인 복지국가의 상징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당신이 65세 이상의 노인이라면 매월 860,000원에서 2,160,000원의 연금을 지급받습니다. 평생 세금을 내지 않았더라도 860,000원 이상의 기초연금을 받습니다. 병을 앓고 있다면 하루에 3-4번 기초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있는 방문도우미의 수발도 받습니다.

당신이 이제 막 첫 아이를 얻은 가장이라면 아이가 8세가 될 때까지 아내와 번갈아 쉬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월급의 80%가 보장됩니다.

당신이 자녀를 갖고 있는 직장여성이라면 아동이 16세가 될 때까지 아동 1명당 140,000원씩 아동수당을 지원받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휴가와 함께 급여의 80%를 지급받습니다.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매월 보호수당과 장애 보조 물품구입비를 지급받고 생활에 필요한 이동, 주거, 취사 등의 서비스를 각 기초지방자치 단체로부터 100% 제공받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의료비는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하고 개인 부담액은 연 360,000원을 넘지 않습니다. 혹시 병으로 결근하게 되면 첫날을 제외한 2일부터 21일까지는 회사가 병가수당을 부담하고 그 이후는 국가가 병가급여를 부담합니다.

꿈도 아니고, 상상도 아닙니다. 스웨덴에서는 이것이 현실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동수당과 육아휴직이 전면 보장됩니다>

반면 ,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은 OECD 국가 중 1위인데다가 2007년부터 시행된 기초노령연금은 최대 8만7천원, 평균 3만원으로 사실상 용돈수준에 불과합니다.

저출산 위기에 아이를 낳아도 출산지원금은 그때 뿐입니다. 그나마 있는 출산지원금도 구별로 최대 10배까지 차이가 나서 아이를 낳으러 다른 구로 이사를 가는 실정입니다.

가사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직장여성들은 모두 ‘수퍼우먼’이 되어야 합니다. 아동수당도 없고, 그나마 있는 육아휴직도 부실합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사회적 편견 뿐만 아니라 생계의 위험과도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복지의 현주소입니다.


                  <스웨덴에서는 노인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연금이 매월 지급됩니다>

올해 9월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스웨덴은 미국을 제치고 스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올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합니다.

스웨덴은 미국처럼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고,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지리적 위치가 좋지도 않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유럽의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높은 국가경쟁력과 4만불이 넘는 1인당 국민소득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스웨덴은 어떻게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보편적 복지제도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스웨덴을 가서 배우고 싶은 것들입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잘 정비된 보편적 복지제도로 유명합니다.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무상의료, 생계보장 수준의 기초연금, 실업급여 등 잘 정비된 각종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이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제도입니다. 이러한 보편적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세부담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높은 경쟁력은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에서는 복지확대를 낭비로 보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감세혜택을 주어야 투자와 소비, 저축이 촉진되어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폭넓은 시각을 가진다면 스웨덴 현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새로운 성장론이 태어났습니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토지, 노동, 자본을 3대 생산요소로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기계와 노동력을 결합시켜 자연을 개발하고 인공물을 짓는 것이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신(新)성장론에서는 개개인에 체화된 능력을 의미하는 인적자본과 축적된 지식을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학의 혁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사람을 단순한 원동력 또는 기계의 부속물 정도로 여겼지만 신성장론에서는 사람을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봅니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복지혜택을 부여하는 보편적 복지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의미합니다.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는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통해 높은 국가경쟁력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많은 자원과 기축통화로서의 달러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경우에는 지리적 조건이 중개무역과 국제금융시장을 가능케 하여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혜택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자원은 사람 밖에 없습니다.

척박한 자원,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좁은 국내시장으로 인한 높은 무역의존도 등 우리나라가 처한 조건들은 스웨덴과 매우 흡사합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작은 미국’이 아니라 ‘큰 스웨덴’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스웨덴에서 의료비는 광역자치단체가 전적으로 부담합니다>

스웨덴은 높은 세율의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해 오면서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1988년 이후 17년만인 2005년에 4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배로 증가한 이 기간 동안 국제적으로는 걸프전, 9.11 테러, 이라크침공, 이스라엘 분쟁과 이란 핵실험사태 등으로 유가가 치솟고 국제경기는 불황에 빠져있었습니다.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모델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를 입증해주는 대목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느 길로 가야하는가를 찾고 배우기 위해 스웨덴을 방문하고자 합니다. 스웨덴의 경쟁력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느끼고자 합니다. 스웨덴의 교육 및 보육시설, 의료시설, 노인복지시설, 그리고 공공기관 등을 두루두루 돌아보고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제도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높은 조세부담률을 스웨덴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올 것입니다.

또,‘스웨덴의 삼성’인 발렌베리 그룹이 보편적 복지제도를 위해 어떻게 공헌하는지, 그리고 스웨덴 국민들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왜 발렌베리 그룹을 존경하는지도 보고 올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확신을 머리와 가슴으로 모두 채우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다녀와서 스웨덴 복지제도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토론하고 이를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하여 ‘한국형 역동적 복지국가’건설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보편적 복지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달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편적 복지란 특정 계층에게만 복지의 혜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많이 가진 사람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입니다.

저는 위대해진 한 나라의 미래를 바라봅니다.

영토는 작지만 사람이 풍부한 나라,
자원보유율은 낮아도 국가경쟁력이 높은 나라,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현명한 외교로 평화를 주도해가는 나라,
그리고 아무리 빈곤하고 가난해도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의 미래를 봅니다.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슴 속에 그려오겠습니다.

2010. 11. 5

민주당 최고위원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