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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적대를 넘어 다시 평화로 갑시다”




[평양 방문을 위한 공개 서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아침 우리는 새하얗게 눈 덮인 한반도의 대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지를 덮은 흰 눈의 순 백색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새해 우리의 소망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망령이 되살아나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며, 우리의 확고한 다짐과 실천으로 남과 북이 서로 적대를 넘어 다시 평화를 이룩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이 주변 강대국들에게 있었지만, 오늘날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남북한 자신입니다. 남북은 서로를 겨눈 총과 대포를 거두고 다시 손잡고 평화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적대와 증오는 대화의 단절에서부터 야기됩니다. 지난 3년 동안 남북 간을 잇는 대화의 다리는 모두 끊어지고 불태워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끊어진 다리를 다시 놓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고, 우리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하면서 북한 당국과 대화하고 소통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현재의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제가 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남북이 따로 일 수 없습니다.

저는 6.15 공동 선언 5주년을 맞아 5년 전 2005년 6월 15일 평양을 방문했었습니다. 당시에도 남북관계는 순탄치 않았고 북미관계는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장시간 민족 문제와 서해 바다의 평화 문제,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와 6자 회담 재개 문제,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함으로써 이른바 ‘제2의 6.15 시대’ 라고 일컬어지는 남북 간 협력 시대를 통 크게 열 수 있었고, 그 연장선 상에서 북한의 핵 포기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2005년 9.19 공동 성명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께 요청합니다.

2005년 6월 17일 평양에서 제가 서해 바다의 평화 정착 문제를 제기했을 때 위원장께서 거기에 흔쾌히 동의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2011년 새해에 또다시 제2, 제3의 연평도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것은 남북 모두가 패자가 되는 비극의 길입니다. ‘서해 바다를 육지의 개성공단처럼 만들자’고 한 2007년 10.4 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북측이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 대화와 협력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라고 밝힌 것을 적극 환영합니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지난 12월 29일 통일부 업무보고 시 “남북 간에 늘 군사적 대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안보를 하면서도 남북이 대화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 역시 적극 환영합니다. 3일 신년연설을 통해서도 “튼튼한 안보에 토대를 둔 평화 정책과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며,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또한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면 풀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미 북측이 지적했듯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순환합니다. 2000년 10월 북미 간의 적대관계 해소를 약속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는 2000년 6.15 남북 정상 회담과 짝을 이루고 있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천명한 2005년 9.19 공동 성명은 2005년 6월 17일에 이루어진 김정일 위원장과 저와의 소통의 결과가 크게 작용하여 이루어진 성과라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공개적으로 평양 방문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는 한국 국민의 뜻을 전하고 남북 간에 끊어진 대화의 다리를 재건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해 12월 20일, 긴급 외신 기자 회견을 통해 남한 당국에 연평도 사격 훈련 강행 중지를 촉구하고, 아울러 오바마 미국 대통령께 10년 전의 북미 공동 코뮈니케의 복원을 위한 이른바 ‘2011 오바마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불안에 싸여있던 한국 국민의 염원을 대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제 사회의 불신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2005년 6월 17일 김 위원장께서 ‘미국과의 적대 관계가 해소되고 체제에 대한 안전 보장이 이루어진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이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라고 언급한 것을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이처럼 북측이 원하는 북미 간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입니다. 위원장께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6.15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강대국들에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남과 북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직접 해결해 가자고 하는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룩하는 일에 우리 민족끼리 머리를 맞대지 못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문제는 북측의 대화의지에 대한 남측 국민의 불신입니다. 작년의 위태로운 한반도 정세는 우리의 불신을 급격히 심화시켰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1948년 단신으로 38선을 넘어 방북했다가 돌아오시면서 ‘마음의 분단이 허물어져야 영토의 분단이 끝난다’고 비통해했습니다. 우선 남과 북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김정일 위원장께서 저의 방북 요청에 대해 다시한번 통 크게 결단한다면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저의 평양 방문과 면담 요청을 수락해 줄 것을 요망합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국민 여러분 모두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냉전의 청산과 평화와 공동 번영, 그리고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는 주춧돌 하나를 쌓는다는 마음으로 평양에 다녀오고자 합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월 4일

국회의원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