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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복지’는 시대정신입니다.


*아래 글은 정동영 의원이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및 지역위원장들에게 보낸 서신 내용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정동영입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 그리고 그 추위보다 더 서민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구제역, 물가상승 등이 민족 대명절인 설날을 앞둔 의원님의 마음을 무겁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지역을 돌며 의정활동을 통해 주민의 뜻을 실천하고 계실 의원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 민주당이 ‘복지’담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조차도 ‘복지’를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로 갈 것인가, 역동적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극단적인 격차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은 자명합니다. 민주당은 당당하게 복지국가의 비전을 설계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2012년 정권교체의 길은 곧 ‘복지국가’로의 길이 될 것입니다.

복지의 입구는 재원문제이며, 복지의 출구는 쓰임새의 분야들일 것입니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당이 제기한 ‘3+1’정책은 대단히 의미있는 시대적 화두입니다.

국가는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고, 병을 치료하고, 노후를 책임지는’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이를 시장에 맡겨뒀을 경우 어떤 상황에 이르는가는 지금 우리 서민의 팍팍한 현실이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당의 ‘3+1’정책에 주거복지와 일자리복지, 그리고 노령연금의 현실화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도 최고 9만원에 불과한 현재의 노령연금을 최소 생계가 보장될 수 있는 수준으로 상향조정해야 함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노령연금은 전체 노령인구의 68%에 해당하는 375만 명에게 총 2조 7천억 원이 지급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큼 대폭 인상해야 합니다. 아울러 노인 관련 사회적 서비스를 강화하여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함께 실질적 노인복지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결국은 ‘돈’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돈’을 넘어서는 ‘철학과 신념’의 문제입니다. 지난 10.3 전당대회를 통해 당헌에 명시한 ‘보편적 복지’는 단순히 현재 상황에서 복지범위를 좀 더 넓히고, 그 속에서 재원을 확보하는 양적 변화를 뛰어넘는 의미입니다. 복지에 대한 생각의 틀을 ‘시혜적 자선’에서 ‘국가의 의무’로, ‘국민의 기본권리’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운영의 원리를 바꾸고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근본적 혁신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전환에 대한 소명의식이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담대한 실천입니다.

출구에 맞추어 입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분리해서 논의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출구를 말하기 위해서는 입구가 동시에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증세를 반대한다고 입구의 한계를 못박고 나서 출구를 먼저 이야기하자는 것도 모순입니다. 이는 결국 현재 세입구조의 범위 내에서 기존의 복지 패러다임을 수용하자는 의미에 다름 아닙니다. 입구와 출구 모두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현재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목표수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입구전략과 출구전략을 동시에 수립해야 합니다.



비과세감면 축소, 부자감세 철회, 낭비예산 절감, 불필요한 토건사업의 복지예산으로의 전환 등은 관철시켜야할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온국민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면 추가 재원이 필요함은 자명합니다. 이명박 정부처럼 흥청망청 국채를 발행해서 나라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는 길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세금’문제를 정면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은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반드시 말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우리부터 극복해야 합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하며, 많이 버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적게 버는 사람에게 더 적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원칙입니다. 세금은 징벌이 아니라 마땅한 의무입니다. 세금을 통해 정부가 운영되고 국가가 유지됨으로써 모두의 안정적 삶이 유지될 수 있기에 세금은 자신의 삶을 보호하는 투자이며, 다른 사회구성원들을 위한 기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당 내에서는 제가 주장한 ‘부유세’가 부자들에 대한 징벌적 조세라는 반대논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보수 세력의 주장 속에 갇혀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선거전략가 레이코프가 저술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 나오는 ‘코끼리’를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증세를 이야기하면 오히려 복지의제를 왜곡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입니다. 하나는 증세논의, 즉 입구전략에 대한 논의없이 출구전략을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약속이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국민과 당원의 인식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2~23일 19살 이상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 수준을 지금보다 더 늘리자’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53.1%에 이르렀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45.9%)보다 7.2%포인트 높은 수치입니다. 또한 “복지 확대를 위해 최상위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81.3%가 찬성했습니다. 저희 의원실에서 27일 민주당 대의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동응답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2,858명 가운데 부유세 찬성 의견이 83.7%였습니다. 국민과 당원은 준비되어있는데 오히려 당 지도부가 국민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과 당원을 믿고 당당하게 세금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전당대회 이후 끊임없이 당내에 복지국가의 비전과 실천전략을 만들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습니다. 강령과 당헌에 ‘보편적 복지’를 명시하도록 함으로써 당의 진로에 관한 조타수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 그리고 이를 책임져야한다는 사명감으로 특위 위원장을 수차례 자임하기도 했습니다.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는 ‘진보적 민주당’으로서 비전과 실천전략을 확정하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실무추진단 수준이 아닌 당력이 집중되는 특별위원회 조직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입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당론 결정의 마당은 깊고 넓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당헌1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당의 주인인 당원이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설문조사에서 민주당 대의원 79.3%가 전당원투표로 복지재원에 관한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것은 당론을 확정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그 당론을 관철시킬 수 있는 동력을 결집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당론은 충분한 논의를 진행한 후 ‘전당원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복지’는 시대정신입니다. 시대정신은 한 개인이 독점할 수도, 독점해서도 안되는 국민의 요구입니다. 국민은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당의 진보적 선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의원님과 함께 진보적 민주당을 만드는데 기여하겠습니다.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리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뜻깊은 설날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2011년 1월 27일

민주당 정 동 영 올림